2014년 6월 초 홍콩에서는 세계 최대의 로봇학회 ICRA 2014가 열렸습니다. ‘로보틱스 서포트베이’는 현지에 특파원(=필자)을 파견해 세계를 휩쓸고 있는 로봇 기술에 관한 최신 트렌드를 분석했습니다.
2013년 구글의 적극적인 로봇 기업 인수 행렬(보스턴 다이나믹스, 샤프트)과 함께 아마존, 애플 등의 IT 공룡들도 수백억 원을 로봇 분야에 투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올해 ICRA는 어느 때보다 큰 활기를 띠었는데요. 실제로 ICRA 2014에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로봇 기술들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트렌드 1. 시장성이 검증된 의료로봇과 공중로봇의 강세
2000년대만 하더라도 ‘로봇’ 하면 으레 쟁반을 들고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서비스 로봇을 상상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사는 환경은 로봇이 살아가기엔 너무나 척박하고 험난한 공간이었죠. 어지럽게 놓인 물건들은 도무지 장애물과 목표 물체를 구분하기 힘들었고, 애써 분석하고 나면 이내 장애물들이 움직여 있어 로봇을 끝도 모를 장고에 빠뜨리곤 하였습니다. 또한, 서비스 로봇은 시장성에도 한계를 가지고 있어 누구도 단지 커피를 나르는 일을 위해 2억 원짜리 로봇을 구매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의료 로봇은 달랐습니다. 첫째로 수술실이나 재활실은 철저히 통제 가능한 공간으로서 예측하지 못한 장애물과 마주치거나 동적으로 변화는 물체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을 인위적으로 피할 수 있기에 기술적으로 한결 수월했습니다. 이는 불확실한 환경에 대비하기 위한 값비싼 센서들을 과감히 생략하게 함으로써 로봇의 가격 경쟁력에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 다른 의료 로봇의 장점은 바로 시장의 수요가 많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수술 방식에서는 수술을 위한 시야도 확보해야 하고 수술 도구를 조작할 공간도 필요하므로 환부를 크게 절개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수술로봇은 초소형 3D 카메라와 정교한 수술기구로 무장하여 최소 절개 수술(minimal invasive surgery)을 가능하게 하므로 의사나 환자의 입장에서 모두 큰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커피를 나르는 일에는 2억 원을 쓸 사람이 없겠지만, 수술 보조로봇을 위해서는 2억 원을 쓸 수도 있다는 점 역시 의료 로봇의 미래는 장밋빛 미래를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공중로봇(Aerial Robots 또는 Unmanned Aerial Vehicle, UAV) 역시 기술과 시장성을 모두 잡은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예상하시기에는 ‘비행기가 자동차보다 어려운 것 아니냐’ 하실 수 있겠지만, 사실 로봇 입장에선 공중이 지상보다 훨씬 다루기 쉬운 공간입니다. 왜냐하면, 공중로봇은 예측하지 못한 장애물과 만나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고 움직이는 환경 역시 지표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균질하기 때문이죠. 넓고 텅텅 빈 하늘을 나는 로봇과 종로 한복판을 거닐어야 하는 로봇을 상상해보세요. 아무래도 하늘을 나는 쪽이 훨씬 쉽겠죠? (공중로봇 하시는 분들이 발끈하시려나요?)
그뿐만 아니라 고성능 카메라를 장착한 공중 로봇은 국방산업과 민수산업 모두에서 다양한 쓰임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방분야에서 사용되는 공중 로봇의 예로는 군사적 정찰에 사용되는 무인기가 있습니다. 2010년 기준, 이미 세계 51개국에서 158종의 무인기를 운용하고 있으며, 많은 나라가 컴퓨터 클릭만으로 무인기가 알아서 폭격하고 돌아오는 끔찍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민간 분야에서는 4개의 날개가 달린 헬리콥터인 쿼드콥터(일명 드론)가 맹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쿼드콥터에 의해 공중 촬영된 화면을 TV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요, 이러한 쿼드콥터는 도미노 피자의 배달, 아마존 물품의 배송과 같은 미래 택배산업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 무인기 시장은 2013년 66억 달러(약 7조 원)에서 2022년에는 약 114억 달러(약 12조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하니 공중로봇은 앞으로의 성장이 더 기대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트렌드 2. 노동을 대체하는 무인차량 로봇과 산업로봇
이번 ICRA 학회에서도 예년과 같이 많은 수의 무인차량 로봇과 관련된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사실 무인차량 로봇은 매니퓰레이터(로봇 팔)와 함께 오랫동안 전통 로봇연구를 이끌어 오던 쌍두마차(?)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사뭇 그 느낌이 달랐는데요, 아무래도 구글의 무인 자동차가 미국 네바다주에서 운전면허를 획득하는 등 무인 자동차 시대의 서막이 그리 멀지 않아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발표된 연구 내용 역시도 예전보다는 좀 더 실제적인 주행 상황을 가정한 무인 자동차 연구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GPS가 동작하지 않는 빌딩 숲 등에서 비전이나 네트워크를 이용해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알아낼 것(localization)인지에 대한 문제나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 정보의 조각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다룰 것인지(mapping), 그리고 그 와중에 로봇과학자들은 보행자를 어떻게 검출할 것인지와 같은 주제의 논문들을 발표했습니다.
또한, 무인 자동차의 핵심기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기술인 SLAM(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 동시적 위치추정 및 지도작성) 기술 역시 나날이 발전하여 이제는 지도 없이도 비전을 통해 주변 환경을 스스로 파악하며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로봇의 출현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만약 SLAM 기술이 발전하여 LIDAR와 같은 비싼 센서를 무인차량 로봇에서 생략할 수 있다면 무인차량 로봇의 가격이 대폭 낮아지는 동시에 무인차량 시장도 대폭 팽창할 것입니다.
이번 ICRA 학회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산업 현장과 관련한 로봇 연구가 대폭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는 산업체에서 로봇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 이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 이 투자를 통한 연구 성과물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학회 첫날에는 ‘산업환경에서 로봇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워크숍이 열리는 한편, 로봇의 산업현장 적용에 대한 포럼과 함께 이와 관련된 기술에 대한 연구가 다수 발표되어 로봇과 사람이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미래가 매우 빠른 속도로 개척되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움직이는 물체들을 어떻게 구분하고 조작하는지’, ‘로봇에게 새로운 임무를 어떻게 학습시킬지’, ‘사람과 로봇이 공존하는 환경에서 안전을 위해 유연한 제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 등이 발표되었죠.
아직은 산업용 로봇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한 계획(planning)이나 학습(learning) 능력에 있어 사람의 그것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로봇은 주어진 작업을 추상화하고 수학적으로 공략해 나가는 데 한계를 가지고 있고, 환경을 기능적으로 이용(도구를 이용한다든지 장애물들을 치우는 등의 이차적인 생각)하는 것에도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작업현장에서는 사람이 로봇에게 일일이 움직임을 지정해 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손쉽게 로봇에게 일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관련하여 사람의 시범을 보고 로봇이 배우게끔 하는 모사 학습(imitation learning)와 데모 학습(learning from demonstration)에 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앞으로 산업용 로봇이 진정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로봇 스스로 계획하고 학습하는 능력이 필수요소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계획과 학습에서 많은 과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산업용 로봇은 점차 사람의 노동력을 대체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또 다른 사회적 파장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 “알고리즘 사회 1: 알고리즘, 노동사회의 질서를 바꾸다.”(슬로우뉴스)
구글과 애플은 이미 생산공장의 노동자들을 로봇으로 대체하기 위한 시도를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아마존 역시 올해 말까지 10,000대의 로봇을 물류창고에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ICRA에서 이와 관련한 논문 발표가 급증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분야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와 개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미래는 생각보다 일찍 도래하리라 예측되며, 노동시장의 큰 변화가 사회의 충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와 사회의 앞선 미래대책 수립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3D 프린팅 산업인력 1천만 명” 이런 거 말고요.)
트렌드 3. 어느 때보다 강조된 인간과 로봇의 교감(HRI)
로봇이 점점 인간의 영역 안으로 들어옴에 따라 HRI (Human-Robot Interaction) 기술은 이젠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습니다. HRI 기술은 로봇과 인간의 상호작용 기술을 일컫는 말로서 여기엔 물리적 HRI 기술과 인지적 HRI 기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물리적 HRI 기술은 인간과 로봇이 협업하기 위하여 물리적 상호력을 주고받는 기술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외골격 로봇 기술, 일명 아이언맨 기술을 들 수 있습니다.
- 과연 아이언맨은 탄생할까? (T-Robotics)
고정된 힘을 가하는 일반 물체와는 달리 사람은 상황에 따라 매 순간 다른 힘을 로봇에 가하기 때문에 로봇으로선 이러한 외력을 예측하고 실시간으로 대응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무엇보다 로봇에 근접해 있는 사람의 안전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하기에 물리적 HRI 기술은 로봇과 인간의 공존 가능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슈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기술은 앞으로 장애인을 위한 재활/보조기구 시장이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큰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사람과 협업을 해야 하는 공장의 생산설비에서도 매우 요긴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며 앞서 언급한 계획/학습 기술과 함께 물리적 HRI 기술의 발전은 로봇의 노동력 대체를 더욱 가속화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인지적 HRI 기술은 ‘사람이 물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사람과의 깊이 있는 감정 교류까지 사람과 로봇 사이에 벌어지는 매우 다양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각종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로봇을 ‘사람과 정서적인 교감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겼는데요, 기계를 벗어나 ‘인간적인 로봇’이 탄생하기까지는 바로 이 인지적 HRI 기술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이야기는 비단 로봇 분야에만 국한된 이슈는 아니어서 컴퓨터공학, 인공지능, 신경과학, 인지심리학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과 기계의 틈을 허물기 위해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로봇 기술 중에서 파괴적 혁신이 가장 많이 시도하는 곳 중 한 곳도 바로 인지적 HRI 기술입니다. 컴퓨터는 명확하게 정의된 문제의 순차적인 계산을 매우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인간의 뇌는 애매함 속에서 종합적 판단을 빠르게 해냅니다. 컴퓨터가 수십 개의 모터를 제어하는 것이 버거운 일일 테지만, 인간은 수없이 많은 근육을 손쉽게 제어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많은 생각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컴퓨터가 인간의 뇌의 능력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기존의 컴퓨터 로직을 넘어서는 파괴적 혁신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폰노이만 방식의 컴퓨터 구조를 버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컴퓨터 로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두뇌 명령전달 체계(neuroscience)와 근육 운동작용(motor control)에 대해 근본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뇌공학자, 심리학자, 생물학자, 로봇공학자 등이 모여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결국 뇌의 비밀을 파헤치는 쪽으로 귀결될 것으로 보이며 그 비밀들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로봇의 인공지능에 적용되어 우리 실생활에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인지적 HRI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인간과의 교감입니다. 여기엔 ‘사람의 표정을 보고 로봇이 그 의도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느냐’부터 시작해서 ‘과연 감정이란 무엇이냐’와 같은 철학적 질문에 이르기까지 로봇을 넘어서는 매우 다양한 이슈를 품고 있습니다. 따라서 ‘감정로봇’ 역시 다양한 학문이 융합되어야 빛을 볼 수 있는 분야이지요. 또한, 감정에 관한 모든 지식을 로봇에 미리 저장해 둘 수 없기에 로봇 스스로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평생 주기의 로봇학습(life-long learning)과 진화하는 로봇(evolutionary robotics)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네트워크 로봇을 통해 집단지성의 힘을 발휘할 필요도 요구되고 있습니다.
밀들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로봇의 인공지능에 적용되어 우리 실생활에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IT업계에서 매우 흥미로운 소식이 들려왔는데요. 바로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감정로봇인 페퍼(Pepper)를 상용화한다는 소식이 었습니다. 그것도 단돈 200만 원 정도에 말이지요. 추측해보건대 금전적으로는 분명 손해를 보는 장사일 것입니다. 하지만 소프트뱅크는 이 로봇을 공격적으로 보급함으로써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개선하는 로봇을 2차, 3차에 걸쳐 계속 내놓는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참으로 린 스타트업(lean startup)다운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아직 감정로봇 기술이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다량의 자료를 수집한다 해서 인간을 만족하게 해 줄 수준의 비약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로봇 친구를 꿈꿔온 감정로봇의 고향 일본이기에 그 풍부한 내수시장으로부터 로봇 선두기업으로 치고 나갈 동력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 섞인 기대도 해 봅니다. 아무튼, 구글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 소프트뱅크가 출사표를 던짐으로써 이를 지켜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되었네요.
(하) 편에 계속...
이 글은 필자가 슬로우뉴스에 기고한 글 입니다. 슬로우뉴스도 많은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lownews.kr/author/terry-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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