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아침은 항상 조간신문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곤 하셨다.
교양인의 끼니, 종이신문과 9시 뉴스
우리 집엔 종합신문, 경제신문, 영어신문을 포함해 매일 서너 개의 신문이 날라오곤 했는데, 아버지께선 이른 새벽마다 뒷산에 다녀오셔서는 조간신문을 보신 후 출근을 하시곤 하셨다. 어린 나이에 등교 전 5분의 꿀잠이 고팠던 나로서는 아버지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버지는 아침 꿀잠보다도 빼곡한 활자들이 더 좋으셨는지, 늘 그렇게 조간신문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셨었다.
조간신문을 읽는다는 건 세상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산다는 뜻이었고, 인터넷이 없던 시절 조간신문과 9시 뉴스를 챙겨보는 일은 교양인에겐 삼시 세끼 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일과였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가 도래한 후 무엇인가 많이 달라져버렸다. 달라져도 너무 이상하게 달라져버렸다.
우리는 더는 ‘네이버 뉴스’에 많은 시간을 쏟는 이에게 ‘교양인’이니 ‘시간 잘 썼느니’란 말을 붙이지 않는다. 예전, 조간신문을 통해 “새소식”을 가장 먼저 접하던 이들은 사회를 이끌어 가는 첨병 역할을 하였으나, 네이버 뉴스를 ‘새로 고침’하여 새소식을 가장 먼저 접하는 이들은 그저 이 시대의 잉여인간과 다르지 않았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잘못되어 버린 걸까?
1. 포털뉴스를 끊다
작년 초, 나는 포털뉴스를 끊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왜냐하면, 나는 포털뉴스를 통해 그날그날 기자의 눈에 띈 치어리더의 치마 속만을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제목에 낚여 또 치어리더 사진을 클릭하고 있노라면 자괴감과 함께 내가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 말고도 많은 누리꾼들이 동변상련의 고통에 머리를 움켜쥐었고, 그들의 댓글은 내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어머니, 전 쓰레깁니다. ㅠㅠ”
나는 쓰레기였다. ‘내가 왜 이걸 클릭했지? 다신 클릭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계속 클릭하고 있는 나를 보면, 난 진짜 쓰레기가 맞는 듯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나만 쓰레기가 아니더라. 그래. 기자가 쓰레기였다. 이런 기레기…
기레기의 배후, 포털뉴스-광고 생태계
하지만 나중에서야 비로소 배후에 더 큰 쓰레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포털뉴스-광고 생태계였다.
신문 지면으로 만나던 뉴스가 인터넷 뉴스 시대로 넘어오며 광고주는 클릭 당 광고 단가를 매기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언론 매체들은 더욱 제목 낚시질에만 열을 올리게 된 것이다. 매체들은 너무 어려워 보이고 심각한 내용보다는 “성폭행”, “노출”과 같은 선정적 제목이 클릭을 더 많이 유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에 포털의 뉴스스탠드는 가히 포르노 경연장을 방불케 했다.
게다가 탐사보도와 같은 귀찮은(?) 작업을 안 해도 되니 얼마나 효율적인 보도 방식인가!
결국 페이스북으로 수렴한 내 뉴스 채널
난 더는 포털이 양산하는 쓰레기 기사의 ‘호갱’이 되기 싫었고 결국 포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때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당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뉴스를 대해 공유하고 있었으며, 내가 관심 있어 하는 분야의 rss 피드도 충분히 수집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포털을 떠나기로 한 그 날부터 rss 리더와 페이스북 뉴스피드의 글들을 읽는 것으로 매일 아침을 시작하였고, 점차 페이스북 뉴스피드의 양이 내 삶을 압도하자 더는 rss리더를 읽지 못하였고 내 뉴스 채널은 점차 페이스북으로 통일되었다.
2. 위키트리, 허핑턴포스트코리아를 끊다
내가 주로 보던 페이스북 뉴스 채널은 다음과 같았다.
- 한국일보, 한겨레와 같은 정통 언론매체의 페이스북 페이지
- 슬로우뉴스, ㅍㅍㅅㅅ와 같은 인터넷 대안 언론
- 뉴스페퍼민트, 테크니들과 같은 외신 전달 미디어
- 벤쳐스퀘어, 블로터와 같은 IT/스타트업 미디어 채널
- 버지(The Verge), 바이스뉴스(Vice News), 테크크런치(TechCrunch)와 같은 외신
- 그리고 문제의 위키트리,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그리고 인사이트
내가 관심 있어 하는 테크 관련 소식은 국내외 매체들이 페이스북과의 연계를 잘 실행하고 있어 이를 통해 소식을 받는 데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슬로우뉴스나 ㅍㅍㅅㅅ와 같은 인터넷 대안 매체는 시간이 지나도 곱씹을 수 있는 ‘지식이 되는 뉴스’를 전달해 주었기에 나는 크게 만족했다. (물론 아직 100% 마음에 차진 않는다.)
디지털 퍼스트 정책이 이미 정착된 버지와 같은 해외 매체들은 중요한 소식을 너무 신속 정확히 전달해 주었기에 ‘내가 왜 사이트를 방문해서 뉴스를 봐야 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나도 스포츠뉴스 연예뉴스 없인 못 살겠더라
문제는 국내 소식이었다. 비록 한국일보, 한겨레, 조선일보와 같은 매체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전달해주는 있었지만, 그 소식은 때론 특정 정치 이슈에만 편중될 때가 많았고, 나도 때론 작고 소소한 생활에 밀착한 뉴스가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스포츠뉴스 연예뉴스 없인 못 살겠더라.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위키트리,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그리고 인사이트였다. 이들의 포지션은 참으로 애매하면서도 현명했다. 처음엔 기성 언론이 가졌던 한계를 뛰어넘겠다며 ‘더 현명한 대안’으로서 자처하더니, 거기에 예전 포털 뉴스가 주던 잊지 못할 조미료의 맛을 독자에게 얹어 주었다. 독자들은 덕분에 ‘더 현명한 뉴스’를 추구하며 옛 조미료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었고, 이들 매체의 독자 수는 정통매체를 압도하기 이르렀다.
죄책감 없는 ‘복붙’, 뻔뻔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지만 나는 한동안 보던 위키트리와 허핑턴포스트의 구독을 취소했다. 그들의 어뷰징 행태에 더는 동조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전재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기사를 복사(Ctrl+C), 붙이기(Ctrl+V) 하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다.
외국 기사를 무단으로 번역해 올릴 땐 마치 그 매체가 직접 기고한 마냥 “글쓴이: 월스트리트저널”과 같이 올리길 마다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특정 필명이나 OOO뉴스팀으로 모두 수정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렇게 무단으로 퍼온 글 끝에 달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라는 문구를 보았을 땐 그분의 유체이탈 화법을 본 마냥 온몸에 소름이 돋았었다. 난 더는 ‘사람만 모으면 장땡’이라는 이들의 어뷰징에 동조할 수 없었고, 이내 구독을 취소했다.
3. 인사이트를 끊다
국내 소식을 아예 놓을 수 없었기에, 인사이트 역시 ‘복붙’ 신공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를 적어 넣는 뻔뻔함은 다르지 않았지만, 인사이트까지 취소하진 못했었다. 하지만 며칠 전, 난 분노와 함께 결국 인사이트 ‘좋아요’를 취소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분노의 클릭질이 ‘좋아요’ 취소일 뿐이란 게 참으로 안타깝다.) (블라인드 처리도 가능하긴 합니다. – 편집자)
인사이트, 페이스북 뉴스피드 왕좌에 오르다
한국판 허핑턴포스트를 꿈꾼다며 지난 2014년 1월 13일 대대적으로 창간한 인사이트. 박원순 시장,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이용구 중앙대 총장 등 400여 명의 인사가 컨트리뷰터(기여자)로 참여해 여러 칼럼과 에세이들이 실리면서 이 매체는 정말로 한국의 허핑턴포스트로 나아가는 듯 보였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말고 말이다.)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2014년 11월 11일 현재 인사이트는 317,431명의 좋아요를 받고 있으며, 이는 위키트리의 1.2배,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의 1.5배, 한겨레의 2.7배, 조선일보의 3.3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팔로워 숫자다. 그 어떤 매체가 1년도 안 되어 이런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인사이트는 한국 페이스북 뉴스피드의 왕좌로 자리매김하는 듯 보였고 이는 더욱 뉴스의 탈 포털화를 가속했다.
인사이트의 등장은 뉴스 소비를 건강하게 했나?
그렇다면 인사이트의 등장은 우리의 뉴스 소비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었을까? 안타깝게도 대답은 “아니오”이다.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혹은 “포털 뉴스보다 더 나쁘다”가 맞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인사이트엔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어느 날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보고 있는데 인사이트 기사가 자꾸만 내 눈에 거슬렸다. 사실 오늘뿐만은 아니다. 기사들은 종종 여성들의 노출 사진을 담고 있었고, 제목은 “성관계”, “섹스”, “음란”, “포르노” 등 자극적인 단어를 담기에 바빠 보였다. 이 느낌은 어디선가 느껴본 매우 친숙한 느낌이었다. 바로 내가 포털뉴스를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의 바로 그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누드 사진’이란 글을 클릭하고 돌아오는 허탈감 역시 치어리더 기사를 클릭했을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더 나쁜 것은, 이 ‘인사이트’ 넘치는 글들은 마치 자신이 좋은 글인 양 포장을 한 채 더 노골적인 누드 사진, 더 노골적인 누드 영상으로 내게 불량식품을 먹기고 있었단 사실이었다. 나는 하도 인사이트에 ‘‘인사이트’ 넘치는 글이 많기에 그들의 수를 한번 세어보았다.
‘인사이트’ 넘치는 인사이트 기사를 일일이 세 보다
보이는가? 무려 30%가 성(性), 동물, 연예 아니면 ‘~가지’ 제목의 지겨운 꼬드김 기사였던 것이다!
자잘해서 분류는 다 하지 못했지만, 이 외의 소식들에도 단순히 해외토픽 영상을 공유하거나 뉴스 중에서도 “자살”, “살인”과 같은 자극적인 소재들이 많았다. 이 매체가 과연 우리의 미래 언론을 대체할 대안 언론이 맞는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뉴스는 고작 동물과 아기가 함께 ‘부비부비’하는 영상이었을 뿐이었단 말인가?
나는 ‘빡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약간 울컥하지만, 이 뉴스들을 하나하나 세어보면서 나는 막말로 ‘빡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포털뉴스는 그래도 내게 선택권이라도 주지, SNS 뉴스(페이스북 등 소셜서비스에 그 유통 기반을 둔 매체를 이하 ‘SNS 뉴스’라고 부르고자 한다)는 그들이 떠먹여 주는 대로 그대로 내 안방을 내어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SNS 뉴스는 노출되는 뉴스 선정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진대, 저명한 컨트리뷰터들이 좋은 글을 기고한다던 인사이트는 어디 가고 세상의 온갖 성폭행 소식, 강아지 소식만 내 안방을 점령하고 있으니 어찌 내가 분노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난 인사이트의 팔로우를 끊었다. 세상에 볼만한 SNS 뉴스는 없다. 너무도 서글픈 현실이다.
20년 전 아버지의 신문과 오늘날 소셜미디어 뉴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아침은 항상 조간신문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곤 하셨다. 우리 집엔 종합신문, 경제신문, 영어신문을 포함해 매일 서너 개의 신문이 날라오곤 했는데, 아버지께선 이른 새벽마다 뒷산에 다녀오셔서는 조간신문을 보신 후 출근을 하시곤 하셨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 강산이 두 번 변했고, 우리 환경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발전하고, 변했다. 하지만 오직 언론 매체만은 그리 많이 발전하지 못한 듯 보인다. 인터넷 시대엔 클릭 유도에만 매몰한 기사를 양산하더니, 소셜미디어 시대엔 선정적인 기사나 가벼운 흥미 위주의 영상들만이 타임라인을 도배한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매체는 과연 우리 아버지가 매일 펼쳐보셨던 서너 개의 신문보다 더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이건 정말 큰 문제라 느껴야 하지 않을까?
SNS 뉴스에 바란다
진짜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 뉴스에서 중요한 듯이 다루어지는 이슈가 정말 사람들에게 중요하다고 인식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이 연구결과들에서 도출한 이론이 ‘의제설정 이론’(혹은 아젠다 세팅 이론)이다. 의제설정 이론은 하나의 연구 결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언론학계의 주류 이론이다.
SNS 뉴스는 이미 우리의 온라인 생활에 매우 깊숙이 침투해 있기에 우리는 이들의 뉴스 선정 문제를 단지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는 결국 시민들을 누군가의 성추행 기사에는 죽어라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폭압과 압제에는 침묵하도록 나쁘게 길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귀여운 동물 동영상만 보다가 사회적 이슈에 한목소리를 모으지 못한다면 이에 대해선 미디어가 책임 있는 역할 개선을 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SNS 뉴스에 바란다. 독자들이 그대들에게 뉴스피드를 내준 것은 단지 그대들의 클릭 수를 높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대들이 만들어주는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부디 사회적 의식을 지닌 ‘언론 매체’로서 책임의 무게를 절실히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대들은 ‘세웃동’이나 ‘피키캐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은 필자가 슬로우뉴스에 기고한 글 입니다. 슬로우뉴스도 많은 사랑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lownews.kr/author/terry-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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